2025년 우크라이나와 중동 분쟁의 장기화가 불러온 글로벌 에너지 패러다임의 변화와 'CRINK' 연대로 대표되는 신냉전 안보 지형을 심층 분석합니다. 에너지 무기화와 공급망 재편 속에서 한국이 나아가야 할 전략적 방향을 제시합니다.
2025년 현재, 지구촌은 단순한 분쟁의 시대를 넘어 '다중위기(Polycrisis)'가 고착화된 새로운 역사의 변곡점에 서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4년 차에 접어들었고, 중동의 전화는 가자와 레바논을 넘어 지역 전체의 안보를 위협하는 상시적 변수가 되었다. 과거의 국제 질서가 '경제적 효율성'과 '자유무역'이라는 가치 아래 움직였다면, 지금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안보'가 모든 경제적 결정을 압도하는 시대다. 특히 에너지 가격의 구조적 상승과 지정학적 리스크 프리미엄의 일상화는 전 세계 가계와 기업의 생존을 위협하는 실존적 문제가 되었다. 본 포스팅에서는 장기화된 두 개의 전쟁이 에너지 시장과 국제 안보 프레임워크에 남긴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분석하고, 다극화된 세계 질서 속에서의 생존 전략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에너지 가격의 '뉴 노멀': 자원 무기화와 지정학적 프리미엄의 고착화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유럽을 강타했던 에너지 쇼크는 2025년 현재 '공급망의 완전한 재구조화'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과거 러시아산 천연가스(PNG)에 의존하던 저비용 구조는 해체되었으며, 그 자리를 미국과 카타르 중심의 액화천연가스(LNG)가 채우며 에너지 가격의 기본 하단선 자체가 상향 조정되었다.
① 지정학적 리스크의 상시 반영과 심리적 지지선
2025년의 원유 및 가스 시장은 더 이상 전통적인 수요-공급 곡선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의 드론이 러시아 내륙의 정유 시설을 타격하거나, 홍해의 항로가 예멘 반군에 의해 위협받을 때마다 시장은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를 '심리적 가격 지지선(Psychological Price Support)'이라 부른다. 실제 공급 차질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잠재적 위험 자체가 가격에 10~15%의 프리미엄을 상시적으로 얹어놓는 구조가 안착된 것이다.
② 에너지 공급망의 '요새화'와 탈러시아 가속화
유럽연합(EU)의 REPowerEU 정책은 2025년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으나, 그 비용은 혹독하다. 러시아산 가스를 대체하기 위해 건설된 수많은 LNG 터미널과 고가의 장기 공급 계약은 유럽 경제의 고비용 구조를 고착화시켰다. 이는 결과적으로 유럽 제조업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졌으며, 에너지 주권을 지키기 위한 원자력 및 재생에너지로의 '강제적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제 에너지는 시장에서 사고파는 상품이 아니라, 국가의 생사를 결정하는 '전략 자산'으로 완전히 재정의되었다.
③ 에너지 무기화의 진화: 하이퍼 하이브리드전
물리적 파괴뿐만 아니라 에너지 그리드에 대한 사이버 공격, 해저 케이블 및 파이프라인에 대한 사보타주 위협은 에너지 가격의 불확실성을 증폭시키는 핵심 요인이다. 2025년 들어 발트해와 지중해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미확인 선박'에 의한 인프라 접근 사고는 에너지 시장에 보이지 않는 공포를 확산시키며, 각국 정부로 하여금 막대한 안보 비용을 지출하게 만들고 있다.

'CRINK' 연대와 안보 지형의 재편: 다극화된 신냉전의 도래
장기화된 전쟁이 낳은 가장 위협적인 결과는 권위주의 국가들의 전례 없는 결속이다. 중국(China), 러시아(Russia), 이란(Iran), 북한(North Korea)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CRINK' 연대는 이제 서방의 주도권에 대항하는 실질적인 군사·경제 블록으로 기능하고 있다.
① 기능적 결합을 넘어선 전략적 운명 공동체
과거 이들 국가의 관계가 일시적인 이해관계에 기초했다면, 2025년의 CRINK는 **'생존을 위한 상호 보완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 북러 동맹: 북한은 러시아에 대규모 포탄과 인력을 공급하며 실전 데이터를 확보하고, 러시아는 그 대가로 첨단 위성 및 미사일 기술을 이전함으로써 한반도 안보 지형을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 중러-이란 에너지·금융망: 서방의 SWIFT 배제에 대응해 중국과 러시아는 자국 통화 결제 비중을 80% 이상으로 끌어올렸으며, 이란은 러시아에 드론 기술을 제공하고 중국에 안정적인 원유를 공급하는 삼각 공조 체제를 완성했다.
② NATO의 확장과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의 부상
서방 진영 역시 NATO의 북진과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동맹 강화(AUKUS, Quad 등)로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지점은 인도, 브라질,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의 행보다. 이들은 어느 한 진영에 치우치지 않고 자국의 이익에 따라 양측과 거래하는 '전략적 자율성'을 구사하며, 국제 정치의 새로운 캐스팅보트로 떠올랐다.
③ 국제기구의 무력화와 '각자도생'의 안보 질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상임이사국 간의 대립으로 사실상 기능을 상실했다. 국제법과 규범에 기초한 분쟁 해결은 옛말이 되었으며, 이제는 실질적인 군사력과 경제적 위압(Economic Coercion)이 국제 관계를 규정한다. 이러한 '힘의 논리' 시대의 귀환은 중견국들에게 더 많은 국방비 지출과 독자적인 안보 네트워크 구축을 강요하고 있다.

기술 안보와 공급망의 '디리스킹(De-risking)': 경제적 국수주의의 확산
중동과 우크라이나의 전장은 단순한 무력 충돌의 장이 아니라, 인공지능(AI), 드론, 위성 통신 등 첨단 기술이 국가 안보와 어떻게 직결되는지를 보여주는 거대한 실험실이 되었다. 이는 곧 경제 안보의 핵심인 '공급망 요새화'로 이어지고 있다.
① 기술 주권과 '프렌드 쇼어링'의 심화
반도체, 핵심 광물, 배터리 등 미래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자원들은 이제 단순한 무역 대상이 아니다. 미국과 EU는 지정학적 리스크가 있는 국가들로부터의 의존도를 낮추는 '디리스킹(De-risking)'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2025년의 글로벌 공급망은 효율적인 최적 경로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국가들끼리 연결되는 '가치 기반 공급망'으로 쪼개지고 있다.
② 전장의 교훈: 저비용 고효율 무기체계와 산업 안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증명된 저가형 자폭 드론의 위력은 전 세계 국방 전략을 수정하게 만들었다. 이제는 값비싼 전투기 한 대보다 수만 대의 드론을 양산할 수 있는 '제조업 역량'이 안보의 핵심이다. 이는 민간 산업 기술과 군사 기술의 경계가 무너졌음을 의미하며, 각국은 자국 내 핵심 제조 설비를 유지하기 위해 막대한 보조금을 투입하는 '신중상주의' 정책을 펼치고 있다.
③ 식량 및 비축 자원의 전략화
중동의 불안은 에너지뿐만 아니라 글로벌 물류의 동맥인 해상 항로를 위협하고 있다. 이는 식량 안보와 직결되며, 2025년 현재 많은 국가가 주요 곡물과 희토류에 대한 국가 비축분을 분쟁 이전 대비 2배 이상 확충하는 추세다. 'Just-in-Time(적기 생산)'의 시대는 가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Just-in-Case(만약의 대비)'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2025년의 국제 정세는 우리에게 단기적인 대응이 아닌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중동과 우크라이나의 분쟁이 끝난다 하더라도, 이미 재편된 에너지 공급망과 블록화된 안보 지형은 쉽게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에너지 의존도가 높고 수출 중심의 경제 구조를 가진 만큼, 이러한 지정학적 풍랑에 가장 민감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다음의 세 가지 방향에서 생존 전략을 재점검해야 할 것이다.
- 에너지 포트폴리오의 혁신: LNG 공급선 다변화를 넘어 원전 및 수소 에너지 등 독자적인 에너지 안보를 강화해야 한다.
- 안보 유연성의 확보: 한미일 협력을 공고히 하되, 다극화된 세계 질서 속에서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의 실용적 협력 채널을 넓혀야 한다.
- 공급망 회복력 강화: 핵심 기술에 대한 주권을 확보하고, 지정학적 리스크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여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국가 차원의 '경제 안보 시스템'을 상시 가동해야 한다.
위기는 곧 기회이기도 하다. K-방산의 도약과 에너지 전환 기술의 발전은 이러한 혼돈의 시대에 한국이 새로운 표준을 제시할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흔들리는 국제 질서 속에서 우리는 냉철한 분석과 단호한 실행력으로 이 변곡점을 통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