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내란의 핵심 인물인 여인형 방첩사령관의 죄목과 보안사·기무사로 이어진 군 정보기관의 흑역사를 분석하고 방첩사 폐지의 당위성을 설명합니다.
대한민국 군의 역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단연 군 정보기관이 헌법을 유린하고 내란의 도구로 전락했던 순간들일 것이다. 최근 발생한 12.3 비상계엄 사태는 과거 보안사령부와 기무사령부가 저질렀던 흑역사가 2026년 오늘날에도 현재진행형임을 보여 주었다. 특히 그 중심에 선 여인형 방첩사령관의 행적은 군의 명예를 실추시킨 결정적인 오점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죄목과 12.3 내란의 주도적 역할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은 12.3 비상계엄 선포 전후 과정에서 내란의 핵심 실행범으로 지목받고 있다. 그에게 적용되는 가장 무거운 죄목은 형법 제91조에 명시된 '내란죄'이다. 여인형은 국방부 장관의 지시를 받아 계엄 선포 전부터 국회의원 체포를 위한 전담반을 구성하고 정치인들의 동향을 파악하는 등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세운 혐의를 받는다.
특히 방첩사의 정보력을 동원해 국회 진입을 시도하고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의 활동을 물리적으로 저지하려 한 행위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든 중죄에 해당한다. 이는 군 기밀 보호라는 본연의 업무를 망각한 것이며 군 통수권자의 사병처럼 움직이며 국가 전복에 가담한 행위와 다를 바 없다. 법조계에서는 그가 계엄사령부 내에서 실질적인 '머리' 역할을 하며 내란을 획책했다고 보고 있으며 이는 군형법상 초소이탈 및 직권남용 등과 맞물려 엄중한 처벌 대상이 된다. 엄중한 처벌이 필요한 이유이다.

보안사에서 방첩사까지 이어진 군 정보기관의 흑역사
대한민국 군의 흑역사는 정보기관의 비대화와 정치 개입에서 시작되었다. 12.12 군사 반란의 주역이었던 전두환의 보안사령부는 군내 파벌을 조성하고 민간인을 사찰하며 독재의 기반을 닦았다. 1990년 윤석양 이병이 폭로한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 대상자 명단은 당시 한국 사회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군부 독재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이후 기무사령부로 명칭을 변경했으나 고질적인 병폐는 사라지지 않았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유가족들을 미행하고 사찰한 행위도 그렇고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탱크와 장갑차를 동원해 서울을 점령하려 했던 계엄령 검토 문건 사건은 기무사가 여전히 '정치 군인'들의 온상이었음을 증명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방첩사령부로 재편하며 환골탈태를 약속했지만 여인형 사령관 체제 아래에서 벌어진 이번 12.3 내란은 이름만 바꾼 조직 개편이 얼마나 무의미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군 역사의 비극이다.

방첩사 폐지와 군 정보 기능의 민주적 재편
반복되는 흑역사를 끊어내기 위한 유일한 해결책은 방첩사의 완전한 폐지일 것이다. 군 정보기관이 수사권과 정보권을 동시에 쥐고 정치적 야욕을 가진 지휘관을 만났을 때 그것이 어떻게 국가 재앙으로 이어지는지 국민들은 반복해서 목격했다. 여인형 사령관이 내란의 선봉에 설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방첩사가 가진 견제받지 않는 무소불위의 권력이 있었다.
방첩사를 폐지하고 군 보안 업무를 국방부 직할 부대로 축소 개편하는 것은 물론 수사 기능은 전면 민간으로 이관해야 한다. 군은 오직 적의 위협으로부터 국가를 지키는 본연의 임무에만 충실해야 할 것이며 내부 감시라는 명목으로 국민과 정치권을 넘보는 일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이번 12.3 사태를 계기로 군 정보기관의 흑역사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그리하여 다시는 제2의 여인형이나 제2의 보안사가 탄생할 수 없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군의 명예는 스스로 헌법을 수호할 때 빛난다. 여인형 전 사령관과 방첩사가 보여준 내란 가담 행위는 군의 명예를 스스로 짓밟은 행위이자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치욕을 남긴 사건이었다. 이제는 비정상적인 군 정보 기구를 해체하고 군이 진정한 국민의 군대로 거듭나기 위한 고통스러운 결단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