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보다 더한 네타냐후, 전범 재판대에 서야 한다.
2026년 4월 이슬라마바드 협상 결렬로 드러난 베냐민 네타냐후의 전쟁 지속 야욕과 미국의 방조적 태도를 비판하며, 가자지구 학살을 넘어 중동 전역을 전란으로 몰아넣는 현대판 히틀러의 만행을 고발한다.
2026년 4월, 이슬라마바드에서 들려온 협상 결렬 소식은 중동의 평화가 얼마나 허망한 신기루인지 다시금 증명한다. 베냐민 네타냐후는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인류의 양심을 제물로 삼고 있다. 가자지구의 비극을 넘어 이란과의 전쟁까지 획책하는 그의 행보는 과거 나치의 광기와 소름 끼치도록 닮아 있다. 평화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뒤로는 전쟁의 불씨를 지피는 미국의 이중성 또한 이 거대한 참상의 공범이라 생각한다. 이 지점에서 과연 국제사회의 정의가 실종된 것은 아닐까 하는 강한 의구심이 든다. 이제는 침묵을 깨고 그를 전범 재판소 피고인석에 앉혀 법의 엄중함을 보여주어야 한다.

멈추지 않는 선혈의 행진과 이슬라마바드의 무너진 평화
2026년 4월 현재, 중동은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한 시기를 통과하고 있다. 국제사회가 한 가닥 희망을 걸었던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의 미국과 이란 간 종전 협상이 결국 아무런 결실 없이 결렬되었다는 소식은 전 세계를 절망에 빠뜨렸다. 21시간에 걸친 마라톤 협상 끝에 제이디 밴스 미국 부통령이 빈손으로 귀국을 선언한 이면에는, 평화의 물꼬가 트일 때마다 이를 교묘하게 가로막아 온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추악한 정치적 셈법이 자리 잡고 있다. 전쟁을 멈추기 위한 대화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레바논과 가자지구를 향한 폭격을 멈추지 않는 그의 행태는, 평화가 곧 자신의 몰락임을 직감한 독재자의 마지막 발악처럼 보인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지만,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경험한 민족의 지도자가 다른 민족을 향해 똑같은 방식의 절멸을 시도하는 광경은 지독한 모순이다. 2024년 국제형사재판소(ICC)가 네타냐후에 대해 전범 혐의로 체포 영장을 발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2년이 지난 지금 오히려 전쟁의 범위를 이란과 레바논으로 확대하며 인류의 양심을 비웃고 있다. 이 상황을 지켜보며 과연 국제법이 권력 앞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심각한 회의를 느끼게 된다. 네타냐후의 행보는 단순한 국지전 수행이 아니라, 중동 전체를 불바다로 만들어 자신의 사법 리스크를 덮으려는 치밀하고도 잔인한 기획이다.
가장 개탄스러운 지점은 이러한 만행을 방조하고 때로는 조장하는 미국의 태도다. 이슬라마바드 협상장에서 미국은 이란에게 일방적인 레드라인을 요구하면서도,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습에 대해서는 사실상 묵인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는 평화를 원하는 국제사회의 갈망을 배신하는 행위이며, 네타냐후라는 괴물에게 학살을 계속할 수 있는 기름을 부어주는 꼴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네타냐후를 현대판 히틀러로 규정하고 그를 전범 재판소 피고인석에 앉혀야 할 시간이 이미 한참 지났음을 직시해야 한다.

전범의 도구로 전락한 중동의 하늘과 7만 명의 희생
네타냐후가 자행하는 범죄의 수치는 이미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2026년 4월 6일 기준, 가자지구의 누적 사망자는 7만 2,302명으로 집계되었으며 부상자는 17만 명을 넘어섰다. 사망자 중 절대다수가 어린이와 여성이라는 사실은 이 전쟁이 하마스 섬멸이라는 명분을 넘어선 명백한 인종 청소임을 증명한다. 히틀러가 아우슈비츠에서 가스실을 사용했다면, 네타냐후는 가자지구를 거대한 창살 없는 감옥으로 만들고 기아와 고성능 폭탄을 이용해 서서히 숨통을 조이고 있다. 이는 현대 문명 사회에서 벌어질 수 있는 가장 추악한 반인륜적 범죄이다.

네타냐후는 가자지구의 비극을 은폐하기 위해 이란과의 전쟁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시리아 주재 이란 영사관 폭격과 같은 도발적인 행위는 이란의 보복을 유도하여 서방 국가들을 자신의 전쟁에 강제로 끌어들이려는 고도의 전략이다. 실제로 2026년 들어 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직접적인 미사일 교전이 빈번해지면서 중동 전역은 언제 핵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이러한 확전의 책임은 전적으로 네타냐후에게 있으며, 그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전 세계의 안보를 인질로 잡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전술은 과거 나치가 사용했던 대외 침략을 통한 내부 결속 방식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네타냐후의 하야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그는 전쟁 중이라는 핑계로 모든 반대 의견을 억압하고 있다. 특히 레바논에 대한 휴전은 절대 없다고 못 박으며 직접 협상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미국과 이란의 종전 협상을 무력화하기 위한 노골적인 어깃장이다. 네타냐후의 관점에서는 평화가 곧 감옥으로 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에, 그는 중동의 하늘에 더 많은 선혈이 뿌려지기를 원하고 있을 것이라 본다. 이 잔인한 연극을 멈추기 위해서는 그를 즉각 전범으로 기소하고 물리적인 제재를 가하는 방법뿐이다.

미국의 위선과 협상 방해 행태에 대한 신랄한 고발
이슬라마바드 협상 결렬의 핵심적인 원인은 미국의 무책임한 외교적 스탠스에 있다. 미국은 표면적으로는 중동의 평화를 외치지만, 실제로는 이스라엘에 막대한 군사 원조를 지속하며 네타냐후의 폭주를 뒷받침하고 있다. 밴스 부통령이 협상 결렬의 화살을 이란으로 돌리는 행위는 전형적인 유체이탈 화법이다. 이란이 요구한 것은 레바논과 가자지구에서의 실질적인 휴전 약속이었으나, 미국은 이스라엘의 안보를 명분으로 네타냐후의 공격권을 보장하려 했다. 이는 협상의 기본 전제조차 갖추지 못한 오만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미국이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습을 휴전 위반 행위로 규정하지 않고 묵인한 것은, 네타냐후가 이란과의 협상을 마음껏 흔들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준 것과 다름없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네타냐후와의 긴밀한 소통 과정에서 휴전 합의 내용이 이스라엘에 유리하게 번복되는 현상은 국제 정치의 추악한 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수만 명의 목숨이 경시되는 현실을 보며, 미국이 주장하는 인권과 민주주의가 얼마나 선별적이고 위선적인지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네타냐후는 미국의 이러한 비호를 등에 업고 국제사회의 모든 권고를 무시하고 있다. 그는 미국 대표단이 협상을 벌이는 와중에도 레바논에 대한 맹폭을 가함으로써 협상의 동력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이는 네타냐후와 미국 강경파가 결탁하여 중동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이를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음모라고 판단한다. 진정으로 인류의 평화를 원한다면 미국은 이스라엘에 대한 모든 군사적 지원을 즉각 중단하고, 네타냐후를 국제법의 심판대에 세우는 데 동참해야 한다. 방관하는 자 또한 공범이며, 미국의 이중 잣대는 머지않아 국제 사회의 거대한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