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내란 무기징역 선고 지귀연 판결의 문제점
지귀연 판사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죄 1심 선고에서 무기징역을 선고하며 제시한 양형 이유의 논리적 모순을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65세라는 나이, 실패한 내란, 치밀성 부족 등을 감경 사유로 삼은 재판부의 시각이 왜 국민 법감정 및 역사적 맥락과 철저히 괴리되어 있는지 한국 현대사의 관점에서 조명한다. 헌정 질서를 파괴하려 한 행위에 대한 사법부의 온정주의가 남길 치명적인 선례를 짚어보고, 시민의 힘으로 지켜낸 민주주의의 가치를 다시금 확인한다.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를 송두리째 뒤흔든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 이른바 '내란 우두머리' 혐의에 대한 1심 선고가 마침내 내려졌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 지귀연 부장판사는 검찰의 사형 구형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비록 무기징역이라는 중형이 내려졌으나, 재판부가 내란죄 성립을 명확히 인정하면서도 덧붙인 양형 감경 사유들을 살펴보면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 피고인이 65세의 고령이라는 점, 내란이 실패로 돌아가 실질적인 인명 피해가 거의 없었다는 점, 그리고 범행의 준비 과정이 치밀하지 못했다는 점 등을 형을 깎아주는 구실로 삼은 것이다.
국가의 근간을 흔들고 주권자인 국민을 향해 총구를 겨누려 했던 헌법 파괴 범죄에 대해, 재판부는 지극히 안일하고 기계적인 법 논리를 들이밀었다. 과연 이러한 재판부의 논리가 피 묻은 역사 속에서 민주주의를 지켜낸 시민들의 상식에 부합하는가? 나는 이번 지귀연 판사의 선고가 내포하고 있는 치명적인 법리적, 역사적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짚어보고자 한다. 사법부가 내린 얄팍한 온정주의적 판결은 자칫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리는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65세가 고령이라는 핑계와 실패한 내란의 역설
가장 먼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65세라는 나이를 고령으로 간주하여 감경 사유로 삼은 재판부의 시각이다. 현대 대한민국 사회에서 65세는 결코 판단력이 흐려지거나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노맹의 나이가 아니다. 오히려 국가의 최고 권력을 쥐고 고도의 정치적, 행정적 결정을 내려야 하는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던 자이다. 그 막강한 권력을 남용하여 헌정 질서를 전복하려 한 범죄의 무게가, 단지 나이가 들었다는 물리적 숫자 하나만으로 가벼워진다는 논리는 그 어떤 법리적 타당성이나 설득력도 확보할 수 없다. 평소 권력을 휘두를 때는 나이나 책임 능력이 전혀 문제 되지 않다가, 그 권력의 칼끝이 부러져 심판대에 올랐을 때만 나이를 무기 삼아 동정론을 펴는 것은 법의 엄정함과 형평성을 철저히 기만하는 행위다. 또한 공무원으로 오래 복무한 것이 감형의 사유라는 해괴한 주장을 내놓는데 오히려 그반대로 더욱 엄정한 처벌을 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맞을 것이다. 국가공무원이 무소불위의 권력인가.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번 계엄 사태가 실패한 내란이라는 사실이 형을 깎아주는 구실로 작용했다는 점이다. 재판부는 내란이 조기에 실패하여 실질적인 국가 기능의 마비나 물리적 타격이 장기화하지 않았다는 점을 참작했다. 그러나 내란죄의 본질을 생각해보면 이는 참으로 아연실색할 논리다. 만약 그날 밤의 내란이 성공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겠는가? 애당초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와 민주주의는 송두리째 무너지고, 우리는 군사 독재의 암흑기로 다시 회귀했을 것이다. 무모하게 군대를 동원하여 대의민주주의의 상징이자 심장인 국회를 유린하려 한 그 불장난 자체가 국가의 존립을 위협한 최고 수준의 범죄다.
실패했기 때문에 형을 줄여준다면, 이는 헌법 파괴를 시도하려는 잠재적 범죄자들에게 치명적으로 잘못된 시그널을 주는 것과 다름없다. 국가의 명운을 건 내란 범죄에 미수 감경이나 실패 참작이라는 논리를 적용하는 것은 사법부 스스로 민주주의를 방어할 의지가 없음을 자인하는 꼴이다.

시민의 저항을 치밀성 부족으로 포장한 재판부의 심각한 오류
재판부는 범행의 치밀성이 떨어졌다는 점, 즉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 내란을 주도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또 다른 감경 사유로 참작했다. 하지만 이는 당시 긴박했던 12월 3일 밤의 사건 본질을 철저히 오판하고 왜곡한 것이다. 그들의 내란 시도가 불과 몇 시간 만에 무산된 진정한 원인은 범행 계획의 엉성함이나 그들의 선의 때문이 아니었다.
그날 밤, 군용 헬기가 국회 상공을 맴돌고 중무장한 계엄군이 유리창을 깨고 진입하는 공포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평범한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영하의 날씨를 뚫고 국회 앞으로 달려갔다. 내란이 실패한 것은 바로 이 시민들의 강력하고 자발적인 저항이라는 거대한 벽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위법한 계엄 명령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며 국민과의 무력 충돌을 피하고자 했던 일선 군과 경찰의 합리적 판단과 불복종이 있었기에 내란은 물리적으로 완수될 수 없었다.
이토록 빛나는 시민의 용기와 공직자들의 양심이 만들어낸 결과를 두고, 가해자의 치밀성 부족으로 포장하여 감경 사유로 둔갑시킨 재판부의 인식은 목숨을 걸고 국가 위기를 막아낸 시민들의 공로를 철저히 폄하하는 처사다. 게다가 일각에서는 유혈 사태나 대규모 인명 피해가 없었다는 점을 변호하려 하지만, 당시 군 통수권자가 시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보장하라거나 다치지 않게 하라는 명시적인 지시를 내렸다는 증거는 재판 과정 어디에서도 드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국회가 적법한 절차에 따라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을 의결하여 계엄의 명분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정을 무너뜨리고 헌정 중단을 지속하기 위해 추가적인 조치를 계획하고 있었다는 정황만이 뚜렷할 뿐이다. 시민이 피를 흘리지 않은 것은 가해자의 관용 덕분이 결코 아니다.

중세 영국이 아닌 한국 현대사에서 찾아야 할 내란의 교훈
지귀연 재판부의 판결에서 또 하나 실망스러운 지점은 판결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인용한 역사적 사례들이다. 재판부는 수백 년 전 왕정국가 영국의 찰스 1세 사형 판례 같은해외의 낡은 판례들을 길게 끌어와 내란죄의 법리를 설명했다. 하지만 우리가 내란죄를 단죄함에 있어 굳이 바다 건너 이국의 역사를 빌려올 필요가 있는가? 우리에게는 그 어떤 나라보다 뼈아프고 생생한 한국 현대사가 가장 훌륭한 반면교사로 존재한다. 더욱이 현재의 한국은 왕조국가가 아닌 민주공화국으로 애당초 비교 대상이 되지 않는다.
우리 현대사 속 군사 반란과 내란이 국가와 국민에게 얼마나 깊고 치명적인 상처를 남겼는지 상기해 보라. 성공한 내란이었던 과거의 군사반란들은 수십 년간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짓밟고 국민의 입과 귀를 틀어막았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무고한 시민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야 했다. 우리는 그 참혹한 역사를 극복하고 나서야 비로소 내란 책임자들을 법정에 세울 수 있었고, 피와 땀으로 지금의 민주공화국을 반석 위에 올렸다.
재판부가 중세 영국의 왕정 시대 사례를 들며 관념적인 내란의 본질을 논할 것이 아니라, 우리 한국의 현대사 속에서 군대가 자국민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정치에 개입했을 때 치러야 했던 끔찍한 대가를 직시하고 언급했어야 했다. 과거 성공한 내란 세력에게 제대로 된 역사적 철퇴를 가하지 못해 남겨진 상흔들을 되짚어보았다면, 국회에 군을 투입한 이번 사태가 얼마나 반역사적이고 반민주적인 만행인지 훨씬 더 명확하게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 현대사의 특수성과 시민들의 피맺힌 교훈을 외면한 판결문은 헛헛한 법리적 수사에 불과하다.

사법부는 법의 엄정함을 통해 국가의 기틀을 수호할 최후의 보루다. 역사적 맥락과 시민의 희생을 도외시한 채 기계적인 감경 사유만을 들이민 이번 판결은, 훗날 헌정 질서를 파괴하려는 또 다른 권력자나 세력에게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는 뼈아픈 선례로 남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법원의 얄팍한 온정주의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단호하고 엄정한 심판을 통해서만 굳건해질 수 있음을 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